모 연예인 모친의 욕설편지와 언론의 보도

오래 전 경험

조금 오래 전에 우리 가족은 “정신분열증(공식용어 조현병)”을 앓는 친구로부터 상당기간 고통을 받은 적이 있었어요. 처음에는 어려움을 겪는 친구를 돕는다는 생각으로 접근했지만, 선의를 가진 비전문가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걸 금방 깨달았어요.

한번 그 친구의 레이더망에 걸리고 그가 적으로 지목하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당사자와 그 주변을 황폐케 할 만큼 집요하게 피해망상적인 전화, 편지, 투서, 공개적인 욕설과 협박 그리고 지어낸 이야기들로 주변에 모욕을 주는 일을 수년 동안 펼치더군요. 이미 부모를 포함한 형제들은 모두 다 자포자기 된 상태가 되어 있었어요.  처음에는 가족이 어떻게 그렇게 무심하고 냉담할 수 있는가 분노했었는데, 나중에는 우리가 고통을 오래 겪고 나서야 그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지요.

그런 경험 이후로 주변에서 거듭해서 피해망상을 호소하거나, 특정인을 지목해 집요하게 비난을 하거나, 도를 넘은 감정의 폭발을 일으키는 말이나 글을 보게 되면 어떤 상황인지 약간은 이해하게 되었지요.

모 연예인의 가족 스캔들

얼마 전에 모 연예인이 결혼과 더불어 모친과의 관계가 악화되어 언론에 오르내리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관심을 가지지 않았는데, 최근 그 모친이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설로 쓴 편지를 읽으면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어요. 그 편지의 내용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지만 그 형식과 말투 그리고 욕설들은 과거 저와 저의 주변사람들이 받았던 그 친구의 편지들과 너무나 동일하다는 걸 발견했어요.

저는 신경정신과 전문가는 아니므로 제가 의학적으로 뭐라고 판단 할 수는 없지만, 상식으로 판단할 때 지금의 상황은 정상적인 것은 아니라는 것은 직감할 수 있어요. 이는 연예인 가족의 일상적인 스캔들이라고 볼 수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했어요.

더 잔인한 고통을 줄 수 있다

해당 연예인의 스캔들이 언론에 오르내린 것은 1년 정도 되었던 것으로 생각되어요. 한두 번 오르내리는 것이 아니라 잠잠할 만하면 계속 사건이 일어나는 등 지속적으로 언론에서 오르내렸던 것 같아요. 누군가 집요하게 이슈를 만드는 것 같았어요. 그 때까지도 그냥 연예인이고 공인이니 그 정도의 노출은 감수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가졌어요.

최근 공개된 그 모친의 편지를 보고서 저는 “아! 이건 아니구나”라는 걸 깨달았어요. 아마도 조금만 상식이 있는 분이라면 이는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라는 걸 직감 할 수 있었을 거예요. 주변의 신경정신 분야의 전문가에게 조금만 자문하고 직접 인터뷰에 참여시켜보면 금방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을 거라 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의 대형 신문사, 방송국들까지도 너도 나도 이를 대서특필하며 양 측의 대립을 가족간의 부도덕한 싸움으로 해석하고, 대중에게 발가벗겨 볼거리 제공의 재료로 사용하고 있다는 걸 볼 수 있었어요. 어쩌면 이건 당사자들이 서로 간에 주고받는 고통보다 더 큰 고통을 주는 잔인한 폭력이 될 수도 있어요.

이 상황을 대중적인 관심을 끌어 돈을 벌기 위한 재료로만 사용하려고 하지, 어느 언론도 문제를 심층적으로 이해하려고 접근하는 곳은 한 곳도 없다는 건 정말 안타까운 일이어요.

건강한 언론, 건강한 독자

양식 있는 지식인, 교육받은 사람, 사회적 지도자들은 사회의 균형추의 역할을 하며, 좌우로 쏠리는 오해의 간극을 채워주고, 앞뒤로 당기는 갈등을 완충시키는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라 생각해요. 그 가운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언론이고 그 언론이 건강할 때 건강한 사회의 뿌리가 된다고 생각해요.

이런 사건은 처음 한두 번은 언론에서 기사화 될 수는 있겠지만, 더 이상은 기사로서의 가치가 없다고 봐요. 더욱이 지금의 경우 만일 제가 짐작한 상황이 옳다면, 언론은 이 비정상적인 사람이 하는 일에 같이 춤을 추며 놀아난 우스운 모양이 아닐 수 없어요. 나중에 사실이 드러날 경우 얼마나 창피한 일일까요?

저는 그 연예인과 가족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어요. 그러나 신중히 생각해 볼 때,  대중과 언론들은 비정상적인 환경으로 고통 받고 있을지도 모르는 한 가족에 대해 집단 이지매의 폭력을 행사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이제 그만 하기를 부탁하고 싶어요.

“이제 그마 해라. 마이 묵었다 아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