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터와의 두뇌게임, 누가 이기나?

한국을 자주 오가는 항공권 예약은 일종의 전쟁이다. 혼자 오가는 항공권 예약에도 그렇지만 여러 사람이 움직일 때는 더욱 더 신중해야 한다.

나는 주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항공을 타는데 예약은 orbitz.com과 각 항공사 홈페이지에서 예약한다. 항공사 예약페이지는 심플하다 고민할 게 없다. 항공사 마케터들이 너무 게으르거나 잘 모르거나 관료적인 회사 문화와 정책 때문일 수도 있지만 여기서는 고민하고 머리싸움 할 것이 없다. 그냥 조회하면 끝이다.

그러나 orbitz는 다르다. 실시간으로 약 올리고 가격 조정하면서 나랑 두뇌게임 전쟁을 벌린다.

일단 orbitz에서 샌프란시스코-서울인천 노선 항공권을 검색하면 논스톱노선일 경우 대체로 델타가 가장 싸고 그 다음에는 싱가폴 항공, 대한 항공, 아시아나 항공 등이 싼 항공권을 보여준다. 그 가격을 보여준다고 그냥 믿으면 안 된다. 게임은 여기서부터 시작이다.

만일 날짜를 조금 바꿔서 같은 노선을 여러 번 검색하거나 시간이 지나서 세션이 끝나서 다시 같은 노선을 검색하면 검색필드에 내가 이전에 입력한 날짜나 출발지/목적지가 자동으로 입력된다. “참 친절하게 잘 만들었네”라고 생각하면 너무 순진한 생각이다. “아! 얘가 내가 이전에 한 일을 다 알고 있네? 뭔가 찝찝한데?”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 검색에는 지난번 나왔던 싼 항공권은 없어지고 가격이 상당히 오른 항공권들만 구성되어 있다. 뭔가 잘 못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하고 다시 검색해봐도 마찬가지다.

이때 “아 그 싼 항공권은 그 사이에 누가 채 갔나 보다”라고 생각하고 지금의 항공권을 예약하면 실수하는 거다. 이때는 그냥 브라우저를 닫고 1-2일 지나서 다시 컴퓨터를 켜고 브라우져를 켜서 다시 같은 여정을 검색해 보라. “헐, 처음 보여줬던 싼 항공권이 다시 나오네?”

그래서 이번에는 놓치지 말아야겠다고 그 항공권을 덥석 “Select”하면 다음 화면으로 넘어가는데, 거기서 친절하게 “미안한데 금방 선택한 항공권은 더 이상 없는데 아래 항공권에서 선택할레?” 안내 메시지와 함께 앞 화면보다 적게는 $1 많게는 수십/수백불 높은 항공권 리스트들로 주루룩 보여준다. 나는 델타 항공사는 탈 생각을 하지 않아서 주의 깊게 보지 않았지만 어쩌면 내가 선택한 대한항공/아시아나보다 싼 델타항공 티켓 값을 “기존의 최저가 델타항공 티켓가격보다 상당히 높여서, 그러나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보다는 싼 가격으로” 미끼로 보여 줄지도 모른다. 물론 내가 처음 Select한 대한항공/아시아나 항공 가격도 올라 있으니 나로서는 딜레머에 빠지게 된다. 올라간 대한항공/아시아나 티켓을 선택할 것인지, 아니면 처음 선택했던 티켓보다 싼 델타항공 티켓(그러나 orbitz로서는 마진의 폭이 더 커진)을 선택할지 고민에 빠지게 만든다. 어쩌면 여기서 많은 사람들이 실망감에 델타항공 티켓을 선택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orbitz입장에서는 처음 고객이 선택한(대한항공/아시아나) 티켓을 그냥 구매하게 한 것보다, 중간에 함정을 만들어서 한번 고민에 빠지게 만들고 마음을 바꿔 고객입장에서 싼 델타항공을 선택한 사람들만큼은 마진이 더 큰 티켓을 팔아서 orbitz입장에서는 이익을 높이는 결과를 얻은 것이다.

게임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나도 짱구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혹시 브라우저를 다른 것으로 조회하면 어떨까 생각해서 하나는 크롬브라우저로 하나는 MS 익스플로러 브라우저로 같은 티켓을 검색해 본다. 내가 검색한 대부분은 익스플로러 브라우저의 가격이 높다. 흠. 이건 무슨 조화람? 도데체 orbitz 마케터들은 익스플로러 브라우저를 쓰는 사람들을 어떻게 생각하는 것일까? 그래 더 좋고 첨단기능이 있는 크롬브라우저를 쓰지 않고 익스플로러 브라우저를 쓰는 사람들은 어쩌면 좀 덜 영민한 사람으로 규정하고, 가격을 여기저기서 검색하고 비교하면서 머리싸움을 하지 못하는 단순한 사람으로 보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조금 높은 가격을 보여줘도 다른 곳에 더 싼 티켓이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단지 항공사예약사이트보다 조금 싸면 그대로 티켓을 예약하는 것으로 가정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과거에는 orbitz같은 최저가 항공권 혹은 호텔예약 서비스들은 “non-refundable”을 강조하면서 급박한 사정이 생길 것을 예상해서 $150-$300짜리 취소 보험을 꼭꼭 추천하면서 팔았다. 취소보험  옵션선택은 아예 기본 선택이 없다. 모르고 그냥 “Continue”버튼을 누르면 넘어가지 않으면서 “취소보험 선택 할레 안 할레?” 안내 메시지를 보여주고 선택 안하는 것도 “선택”해야만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게 해 놨다. 한번 더 생각하게 만든다.

최근에는 FREE Cancel을 항공권 가격 밑에 눈에 잘 띄는 녹색으로 붙여 두었다. “지금 예약해도 무료로 취소 할 수 있어 그러니 걱정 말고 여기서 항공권 예약해” 식으로 꼬시는 목소리다. 나도 이 유혹이 너무 강렬해서 예약버튼으로 마우스가 자꾸만 가려는 중력을 느낀다. 그래도 참아야 한다. 일단 이때 항공사 예약사이트에 들어가봐야 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취소 deadline을 잘 봐야 한다. 어려운 시간대코드를 쓰면서 정해진 시간을 내가 있는 시간대로 환산해서 보면 어떨때는 2-3일 여유가 있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경우 10시간, 혹은 내가 잠자고 있는동안 deadline이 지나는 경우도 있다. FREE Cancel이 효과없는 생색내기 일 뿐인 경우도 많다. 그래서 항공사 예약사이트를 같이 검색해본다. 어떤 경우에는 가격이 같은데 취소 deadline이 훨씬 더 길게 뒤에 있는 경우도 종종 있다.

orbitz의 예약사이트는 예약을 완료할 때까지 페이지 페이지마다 이렇게 정교하게 계산된 함정과 덫이 곳곳에 펼쳐져 있다. 온라인에서 물건을 산다는 것은 마케터와의 치열한 두뇌게임 전쟁을 치루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시간이 소비되기는 하지만 잘 알면 얻는 혜택이 작지 않다. 잘 모르면 당한다.

고객의 입장에서 봤지만 꺼꾸로 마케터의 입장에서도 생각해 볼 문제다. 우리 스타트업들의 마케터들은 자신의 서비스의 고객과 상품에 대해 얼마나 열심히 고민하고 더 자세히 들여다 보는가 돌아볼 수 있겠다.